공황발작은 지나갑니다. 그런데 발작이 지나간 뒤에도 하루가 편해지지는 않습니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이미 심장이 뛰고,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 대를 그냥 보내고, 약속을 잡을 때 "거기는 좀 그런데" 하고 미루게 됩니다. 발작이 없는 날에도 발작을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이 쌓입니다.
공황장애에서 생활에 실제로 남는 부담은 발작 그 자체보다 이 발작과 발작 사이에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구간을 다룹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글보다 진료가 먼저인 신호
가슴 통증이 쪼그려 앉아야 할 정도로 심하고 식은땀이 날 만큼이라면, 이 글을 더 읽지 마시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뒤 119를 부르십시오. 심근경색증, 폐색전증, 대동맥박리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질병일 수 있으므로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3]
그리고 반복되는 가슴 두근거림과 숨 막히는 느낌을 공황으로 정리하기 전에, 심혈관·호흡기·신경계·내분비 쪽 질환을 먼저 감별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공황장애가 추정되더라도 내과적 평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2] 이 감별 과정과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검사 정상 뒤에도 과호흡과 가슴 답답함이 반복된다면과 검사가 정상으로 나온 뒤의 건강불안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 확인을 이미 거치셨다는 전제에서 읽어 주십시오.
예기불안 — 이 불안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한 번 발작을 경험하고 나면 다음 발작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불안해지게 됩니다. 이것을 예기 불안이라고 하고, 공황장애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1]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불안한 상태, 그것이 병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반응이 아닙니다. 진단 기준에서도 발작 그 자체만 보지 않습니다. 발작을 한 번 이상 겪은 뒤 한 달 넘게 추가 발작이나 그 결과에 대한 걱정이 이어지거나, 발작과 관련해 행동이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 — 이 가운데 하나 이상이 있을 때를 함께 봅니다.[2] 다음 발작에 대한 걱정과 그로 인한 행동 변화가 진단의 한 축인 셈입니다.
피하게 되는 자리들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은 대개 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피하는 자리에는 어느 정도 공통된 유형이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상황, 넓게 트인 곳, 반대로 닫힌 공간, 줄을 서 있거나 사람이 많은 곳, 그리고 집 밖에 혼자 있는 상황입니다.[4] 빠져나가기 어렵거나 곤란해질 것 같고,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 같은 자리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실제로는 더 조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발작이 왔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일상을 다시 짜거나, 평소 하던 활동의 범위를 줄이거나, 몸을 쓰는 운동을 피하는 것도 여기에 들어갑니다.[1] 밖에서 보면 그냥 "요즘 좀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본인도 주변도 이것이 증상의 일부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발작을 겪었다면, 그 자리가 실제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불안 반응이 오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2] 그런데 몸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위험 신호로 저장합니다.

왜 굳어지는가 — 피하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피하면 당장은 편해집니다. 지하철을 포기하고 택시를 타면 그 순간 불안이 내려갑니다. 문제는 바로 그 편해짐입니다. 불쾌한 느낌이 즉시 사라지는 경험은 그 행동을 학습시킵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같은 선택을 더 빨리, 더 자주 하게 됩니다.[7]
동시에 잃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봤다면 "생각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를 몸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피해 버리면 그 배움의 기회가 막힙니다. 그래서 두려운 대상에 익숙해지는 과정 자체가 차단되고,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더 길고 더 세게 남습니다.[7]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는 이 상태를 "공포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사는 순환"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발작이 올까 봐 어떤 상황을 피하기 시작하고, 그 회피가 공황의 감각을 더 키우며, 그 결과 발작이 더 잦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5]
그래서 "의지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때마다 확실한 보상이 따라오도록 구조가 짜여 있는 것이고, 그 구조는 혼자 힘으로 뒤집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들 때
이 순환이 오래 돌면 피하는 자리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고속도로를 피하다가 시내 운전을 피하고, 지하철을 피하다가 버스도 피하게 되는 식입니다.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것이 여기서 남는 실제 부담입니다.
회피가 앞서 말씀드린 상황들 가운데 두 가지 이상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4] 이때는 광장공포증을 함께 보게 되는데, 광장공포증이 있다면 공황장애와는 별개로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1]
다만 이 대목을 읽고 스스로 진단명을 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는 진료에서 정할 일이고, 지금 확인하실 것은 하나입니다 — 최근 몇 달 사이에 가지 않게 된 곳, 하지 않게 된 일이 늘었는가.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닙니다
공황장애에서 대표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입니다.[1] 심리 치료는 단독으로든 약물 치료와 함께든 1차 치료로 선택될 수 있습니다.[6]
여기서 자주 오해가 생깁니다. "피하지 말고 부딪히라"는 말을 듣고 혼자 지하철을 타 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치료에서 말하는 노출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NHS의 설명을 보면, 치료자가 처음에는 아주 완만한 목표부터 잡고, 자신감이 붙는 만큼 목표를 단계적으로 올려 갑니다.[5] 목표의 크기와 순서를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준비 없이 혼자 밀어붙이면 그 자리에서 발작을 다시 겪을 수 있고, 그 경험이 회피를 한 번 더 굳힐 수 있습니다. 애써 시도한 것이 오히려 뒤로 가는 결과가 됩니다.

진료에서 함께 보는 것들
저희 진료실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자리를 피하게 되셨는지, 그 범위가 최근에 넓어지고 있는지를 시간 순서로 확인합니다. 발작 당시의 증상만이 아니라 발작이 없는 날을 어떻게 보내시는지를 같이 여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과적 감별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것을 먼저 정리하시도록 안내드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계신 분께는 그 치료를 유지하시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이뤄지는 치료이고, 저희 진료가 그것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을 스스로 줄이거나 끊는 것은 권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 판단은 처방하신 선생님과 상의하실 일입니다.
어지럼이나 가슴 증상이 함께 있다면 내과적 감별이 먼저입니다. 그 확인을 마치고 오실 때 증상이 있었던 날짜와 상황을 적어 오시면 도움이 됩니다.
참고한 자료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공황장애
-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국립정신건강센터·대한신경정신의학회) — 공황장애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 흉통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What Are Anxiety Disorders?
- Panic disorder · Agoraphobia: Treatment
- Cochrane — Psychological therapies for panic disorder with or without agoraphobia
- Clinical features and mechanisms of anxiety, fear, and avoidance (PMC)
진료 안내
발작 그 자체보다 '또 그럴까 봐' 미리 불안해지는 시간이 더 길어지셨다면, 언제부터 어떤 자리를 피하게 되셨는지 정리해 오셔서 상의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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