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신경염으로 며칠을 앓고 나면 세상이 도는 듯한 회전성 어지럼은 대개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오시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 어지럼은 확실히 줄었는데 온종일 기운이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밥맛이 없거나 먹고 나면 속이 편치 않다고 하십니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라 더 답답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태를 곧바로 "체력이 떨어졌다"로 정리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앞에 있고, 체력 이야기는 그 확인을 모두 마친 다음에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아래에 그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후유증기는 어떤 시기이고, 무엇이 남는가

급성기의 극심한 회전성 어지럼이 지나간 뒤에도 전정기능이 완전히 예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고개를 빨리 돌릴 때 순간적으로 흔들리거나, 걸을 때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 사람 많은 곳에서 붕 뜨는 듯한 감각이 한동안 남습니다. 이런 동적 전정 불균형의 징후는 전정신경염 환자의 30% 이상에서 1년 넘게 관찰된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1] 남은 증상이 오래간다는 것이 이례적인 경과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러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시간이 걸리는 회복 과정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드립니다. 다만 그 판단은 아래의 신호들이 없다는 확인을 거친 뒤에 내립니다.

고개를 돌릴 때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증상은 전정신경염 후 남는 잔존 어지럼에서, 급성기부터 회복까지의 전체 경과는 전정신경염 경과 안내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신호

첫째는 귀 증상입니다. 전정신경염은 원래 청력 증상을 동반하지 않습니다.[2] 그래서 어지럼과 함께 한쪽 귀가 먹먹하거나 잘 안 들린다면, 전정신경염의 후유증이라기보다 다른 진단을 먼저 확인해야 할 신호입니다. 돌발성 난청이나 미로염, 메니에르병처럼 이름과 치료가 달라지는 질환들이 여기에 들어갑니다.[3]

이 경우에는 시간을 끌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청력 저하는 빨리 확인할수록 좋고, 국내 진료에서는 발병 2주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기준으로 봅니다. 회복도 대부분 2주 안에 이루어집니다.[4] 아직 청력검사를 받지 않으셨다면 한의 치료보다 이비인후과 확인이 먼저입니다. 저희 진료실에서도 이런 분은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검사를 먼저 받으시도록 안내드립니다.

둘째는 뇌쪽을 시사하는 증상입니다. 어지럼에 더해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얼굴 한쪽이 처지거나, 물체가 둘로 보이거나, 균형을 잃어 걷기가 어려운 증상이 새로 생겼다면 이는 후유증의 경과로 볼 증상이 아닙니다.[5] 이때는 예약을 기다리지 마시고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후유증으로 보기 전에 먼저 가릴 신호를 청력 확인과 뇌 신호 두 단계로 나눈 도식
증상 판단을 돕기 위해 직접 제작한 설명용 도식입니다.

지금 드시고 있는 약부터 확인합니다

위의 신호가 없다면 다음으로 여쭙는 것은 복용 중인 약입니다. 급성기에 처방받은 전정억제제를 증상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계속 드시고 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정억제제의 장기 복용은 전정신경염의 중추 보상, 즉 뇌가 한쪽 전정기능의 손실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회복 경과를 보면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약으로 봅니다.[2]

이 약들은 진정 작용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종일 처지고 졸리고 입맛이 없는 상태가 체력 문제가 아니라 약의 영향인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피로와 소화 문제를 체력으로 설명하기 전에, 무슨 약을 언제부터 얼마나 드시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스스로 끊으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처방받으신 곳에서 지금도 계속 필요한 약인지 상의해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진료실 책상 위 복용 중인 약을 함께 확인하는 장면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실제 환자 사진이 아닌 AI로 만든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석 달이 넘도록 흔들림이 계속될 때

비회전성의 어질어질함이나 불안정감이 대부분의 날에 석 달 이상 이어지고, 서 있을 때나 걸을 때 심해지며, 사람이나 화면이 많은 복잡한 시각 환경에서 더 힘들어진다면 지속성 체위-지각 어지럼증(PPPD)이라는 별도의 진단명을 고려합니다. 전정신경염은 이 상태의 흔한 선행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6]

이름을 아는 것으로 끝낼 일은 아니고, 이비인후과나 신경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진단입니다. 어지럼이 오래간다고 해서 모두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함께 기억하실 것은 전정재활운동이 이 시기의 표준 치료라는 점입니다.[2][6] 저희가 하는 치료도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쪽입니다. 운동의 종류와 강도는 남아 있는 전정기능과 생활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진료 때 확인하고 안내드립니다.

후유증기에 이석증이 겹쳐 특정 자세에서만 짧게 도는 어지럼이 생기는 경우는 전정신경염 후 이차성 이석증에서 따로 설명했습니다.

복잡한 진열 통로에서 걸음을 멈추고 진열대를 짚은 모습을 뒤에서 담은 설명용 이미지
실제 환자 사진이 아닌 AI로 만든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내과적으로 함께 살피는 것들

어지럼과 피로가 같이 오래갈 때는 귀와 뇌만 보지 않습니다. 갑상선기능저하증, 빈혈, 기립성 저혈압처럼 같은 증상을 만들 수 있는 내과적 문제를 함께 확인합니다. 최근 받으신 혈액검사가 있으면 가지고 오시면 도움이 됩니다.

진료실에서 보는 후유증기의 체력

여기까지의 신호가 모두 없을 때, 비로소 체력 이야기를 합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이 시기의 환자분들에게서 계속되는 약한 어지럼과 피로, 무기력, 소화력 저하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묶음으로 오는 것을 자주 봅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토하면서 앓고 난 뒤라 소모가 큽니다. 어지럼이 줄어도 몸은 아직 그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인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40~50대 환자분들에게서 이런 양상이 특히 자주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치료는 남은 어지럼을 억누르는 쪽보다 떨어진 체력과 소화력이 돌아오도록 하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소화가 되고 밥이 넘어가야 회복에 쓸 힘이 생기기 때문에, 소화력을 먼저 볼 때도 있습니다. 다만 같은 피로라도 환자분마다 몸 상태가 다르므로 처방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맥과 복진, 식사와 수면,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 그때 판단합니다. 여기서 이 약이면 된다고 미리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식사를 앞두고도 기운이 없어 수저를 들지 못한 모습을 뒤에서 담은 설명용 이미지
실제 환자 사진이 아닌 AI로 만든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내원 안내

전정신경염 후유증기로 오실 때는 급성기에 받으신 검사 결과와 처방전, 지금 드시는 약을 가지고 오시면 좋습니다. 청력검사를 아직 받지 않으셨다면 그 확인을 먼저 권해 드리고, 전정재활운동이나 추적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진료 중인 이비인후과·신경과와 병행하시도록 안내드립니다. 한의 치료만으로 닫아 두는 구조가 이 시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어지럼이 줄어든 뒤의 회복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지금 기운이 없다고 해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니, 확인할 것을 확인한 뒤에 몸이 돌아올 시간을 같이 만들어 가시면 됩니다.

본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용 이미지이며 실제 환자의 사진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을 때 참고하세요

이 글은 공개된 학술 문헌과 공공보건기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일반적인 건강정보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한쪽 귀의 청력 변화나 신경학적 증상이 새로 생겼다면 이 글의 내용보다 의료기관의 평가가 먼저입니다.

참고한 자료

  1. 전정신경염의 경과와 전정재활 (J Yeungnam Med Sci)
  2. 전정신경염의 정의와 청력 증상 (J Yeungnam Med Sci)
  3. 미로염 (StatPearls) · 메니에르병 (StatPearls)
  4. 돌발성 난청의 치료 시기 (J Clin Otolaryngol 32(3):212)
  5. 뇌졸중 경고 증상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6. 지속성 체위-지각 어지럼증 (StatPearls, Bárány Society 2017 진단기준 경유)

진료 안내

어지럼은 줄었는데 기운과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 답답하시다면, 급성기에 받으신 검사 결과와 지금 드시는 약을 가지고 오셔서 상의하실 수 있습니다.

진료시간 확인하기 →